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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산일보] 부산의 老鋪, 영진식품_2011.03.10
작성자 영진어묵 (ip:)
  • 작성일 2014-10-09 04:5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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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老鋪).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오래된 점포'다. 하지만 단순히 오래되었다고 모두 다 노포라고 부를 수는 없다. 한 점포가 지역을 기반으로 그 존재 자체가 지역민의 자긍심으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노포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는다. '부산의 노포' 시리즈는 부산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역사와 전통을 가진 점포를 발굴하고 기록해 부산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고자 한다.
 
 
필자는 1990년대 초반 서울에서 매우 난처한 경험을 했다. 길거리의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먹으려는데 '어묵'과 '부산어묵'이 나뉘어 있고 가격 또한 달랐다. 그냥 어묵만 해도 부산보다는 비싼데, '부산어묵'은 그보다 더 비쌌다. "아니 어묵이면 다 같은 어묵이지, 부산어묵이 어디 따로 있느냐"는 항변은 '촌놈'이라는 냉소로 돌아왔다. 부산 사람에게 그것은 일종의 아노미 현상이었다. 

부산은 1876년 개항과 더불어 일본인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발됐다. 광복 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전국에서 몰려든 피난민으로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도시의 정체성이 확립되기 시작했다. 그 후 경제발전과 더불어 해양·수산 중심 도시로 성장해 왔다. '부산어묵'의 역사는 이러한 부산의 과거와 놀랍도록 일치한다. 부산의 근현대사 속의 부산어묵, 혹은 부산어묵 속에 각인된 부산의 근현대사를 한번 돌아보자.

"삼진식품과 영진식품은 어묵 제조 한길만 걸어왔다  
생산단가를 낮출 수 없어 대기업 OEM이나 대형마트 납품 또한 단호히 거절한다
이만하면 부산이란 도시에 어울리는 진정한 노포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부산어묵의 역사는 개항과 더불어 일본인이 대거 정착하면서 시작된다. 1910년 개장한 부평동시장은 전국 최초의 공설시장이다. 192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의 시장'이란 책에 '부평시장은 쌀, 어묵, 채소, 청과물 등이 주종을 이루었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아마도 부산어묵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부산데파트 자리에 1936년 들어선 동광동시장에는 일본인이 세운 어묵공장이 있었다. 이 공장은 광복 후 공장장으로 있던 박동원 씨가 이어 받게 된다.

부산 사람, 아니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어묵공장은 광복 직후 부평동시장에서 시작한 동광식품(창업주 이상조)이다. 1950년에는 일본에서 어묵제조 기술을 배워 온 박재덕 씨가 영도 봉래시장 입구에 삼진식품을 설립한다. 이후 한국전쟁이 일어나 피난민이 대거 부산으로 유입되자 어묵 생산은 호황을 맞기 시작한다. 그즈음 동광식품과 삼진식품의 공장장 출신이 합작해 영주동시장에 환공어묵을 설립하면서 동광·삼진·환공의 3각 구도가 정립됐다. 1960년대가 되자 환공어묵과 삼진식품 등에서 기술을 배운 기술자들이 대거 독립을 하면서 어묵업계는 춘추전국시대를 맞는다. 이때 생겨난 공장들이 영진, 미도, 효성, 대원 등이다. 

동광식품은 잠시 대가 끊어졌다가 최근 창업주의 손자가 중앙시장에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환공어묵은 지난 1990년 부도 후 새 주인을 맞아 경남 김해시로 본사와 공장을 옮겼다. 이러한 부침들 속에, 부산어묵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는 영도의 삼진식품과 부산어묵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초량의 영진식품은 부산어묵의 전통과 자존심이라 할 만하다. 



일본에서 어묵 제조 기술을 배워 온 박재덕 씨는 한국전쟁이 나기 직전인 1950년 영도구 봉래동 2가 39 봉래시장 입구의 판잣집을 빌려 어묵 제조를 시작한다. 봉래시장에 터를 잡은 것은 주변에 인구가 많기도 했거니와 재료의 수급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당시 어묵의 주원료는 연근해에서 잡히는 '풀치(새끼 갈치)'와 '깡치(새끼 조기)'였다. 영도다리 건너 지금의 롯데백화점 광복점 자리에는 '큰 도가'라 불리던 제1 수산시장이, 자갈치시장 초입의 남포동주민센터 자리에는 '작은 도가'라 불리던 제2 수산시장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재료의 선도는 어묵의 품질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소. 운송수단이라 해 봐야 자전거나 손수레가 전부였으니 멀리 갈 수 없었다. 부평동시장이나 영도에서 어묵 제조가 시작된 배경이다.

박 씨의 어묵공장은 한국전쟁으로 영도에 피난민들이 몰려들자 호황을 맞는다. 덕분에 무허가 판잣집에서 시작한 공장은 1954년 삼진식품이라는 번듯한 이름을 갖는다. 현존하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어묵공장의 공식적인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올해로 61년째를 맞는 삼진식품은 여전히 창업 때 자리에서 공장과 판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창업주의 아들인 박종수(58) 대표가 25년째 가업을 잇고 있다.

삼진식품은 어묵 제조에 있어 어육과 밀가루의 함량 75 대 25라는 비율을 수십 년째 고집한다. 인터뷰에 앞서 박 대표는 어묵 시식부터 권했다. 갓 생산되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의 맛은 각별했다. 기존의 어묵과는 탄력에서 많은 차이가 났다. 

"밀가루 함량이 높으면 절대로 이런 탄력이 안 나옵니다. 때로는 생산원가보다 재료비가 더 높을 때도 있지만 원칙을 고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기업과의 경쟁 속에서 소비자에게 선택 받기 위해서는 품질밖에 다른 방법이 없거든요." 

'전통의 맛은 결국 원칙을 고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다소 밋밋한 결론을 내리려는데 박 대표는 뜻밖의 비밀을 한 가지 더 털어놨다. "냉동 연육을 많이 쓰지만 생육도 같이 씁니다. 어획량이 많아 생육 가격이 좋을 때는 생육 비율이 높아집니다. 그럴 때는 수십 년 만들어 온 저희들이 느끼기에도 맛이 기가 막힙니다." 얼핏 비합리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생육을 고집하는 데 따른 자연스러운 변수다. 이런 변수야말로 부산어묵의 숨은 경쟁력이 아닐까? 박 대표는 현재 부산어육제품공업협동조합의 이사장으로 부산 어묵산업 전체의 경쟁력 강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부산의 1세대 어묵공장 격인 삼진식품은 기술자도 대거 배출했다. 그 가운데는 1961년 입사한 영진식품의 박경수 대표가 있었다. 당시 19세였던 그는 기술을 익히고 업계 동향을 파악하는 데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박 대표는 올해로 69세이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묵 하나에만 매달려 반백 년을 살아 온 그는, 그래서 부산어묵의 산 증인으로 통한다. 그의 삶이 곧 부산어묵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박 대표의 회고에 의해 부산어묵의 발전 단계를 짐작할 수 있다. 1940~50년대에는 맷돌에 생선을 뼈째 갈고 기름 솥에 튀기는 방식이었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식용기름에 튀긴 어묵은 고급품으로 시내 요릿집 등에 납품되었다. 싼 어묵은 고래기름이나 전갱이기름 등으로 튀겼다. 밀가루가 비싸다 보니 콩비지를 섞기도 했다. 콩비지를 섞은 어묵은 식감은 퍼석퍼석해도 '꼬신 맛'이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 후반 경제개발과 더불어 어묵업계 역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일본에서 일부 자동화기기가 도입되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으로 외식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어묵업계 역시 본격적인 도약기를 맞이한다. 1990년대부터 부산지역 어묵업계의 공장 이전과 확장이 활발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박 대표는 1966년 삼진식품을 나와 초량시장에서 천막을 치고 어묵 장사를 시작한다. 영진식품의 시작이자 '초량어묵'의 원조인 셈이다. 1970년 동구 초량동 224 초량시장에서 초량성당으로 오르는 현재의 자리에 터를 잡았다. 영진식품 역시 1980년대 후반에 큰돈을 벌었다. 그때는 새벽 3시에 시작해 밤 11시까지 공장을 돌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덕분에 1993년 장림공장을 신축했다. 공장을 신축했지만 영진식품은 여전히 초량시장에서 즉석어묵을 제조·판매한다. 기계화·자동화로는 모두 담아낼 수 없는 노하우를 소비자에게 전하려는 고집 때문이다. 초량공장에서는 수십 년 경험의 기술자들이 여전히 수작업으로 어묵을 제조한다. 그 맛을 잊지 못하는 고객들로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룬다. 반백 년을 한길만 걸어온 장인이 자존심을 걸고 만드는 어묵이니 그 맛은 미루어 짐작하시길…. 박 대표는 고령에도 여전히 오전에는 초량공장, 오후에는 장림공장을 오가는 열정을 보인다. 



삼진식품과 영진식품은 부산의 역사와 함께해 온 전통과 더불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50년 이상 어묵 제조 한길만을 묵묵히 걸어 왔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육 비율 70% 이상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생산단가를 낮출 수 없어 대기업 OEM이나 대형마트 납품 또한 단호히 거부한다. 오로지 어묵의 맛과 품질로서 소비자에게 선택 받겠다는 자존심 때문이다. 이만하면 부산을 대표할 만한, 부산이라는 도시에 어울리는 진정한 노포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흔히 타 지역에서는 부산어묵이 유명한데 비해 정작 부산 사람들은 그 가치를 실감하지 못한다고 한다. 원래부터 어묵 맛이 그런 줄 알고 살아와 비교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명절이 되면 삼진식품과 영진식품에서 3만~5만 원 상당의 어묵선물세트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합니다. 타 지역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부산 출향민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2008년 '부산오뎅을 아십니까'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KNN 최용부 제작국장의 말이다.

맛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니 요즘은 어지간한 지역의 명물 음식은 택배가 가능하고, 택배 가능한 맛집이 뜨고 있다. 이왕이면 50~60년 전통의 진짜배기 부산어묵을 선택해 보는 건 어떨까? 삼진식품과 영진식품 모두 전국 어느 곳이나 택배 주문이 가능하다. 삼진식품(051-416-5468), 영진식품(051-467-1049). 


출처 : 2011.03.10 부산일보 _ http://bit.ly/1s2CMb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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